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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일본어를 배울 때의 느낌이다.

외국어라고는 영어 외에 처음 공부한 것이 일본어다.  우리나라 말과 어순이 비슷해 비교적 배우기 쉽다는 것 때문에 쉽게 접근했지만, 배우면 배울 수록 쉽지 않다고 느끼기도 했다.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제일 어려웠던 것 중의 하나가 겸양어이고, 또 하나는 한자어였다.  겸양어는 단순히 우리 말을 바꾸는 방식으로는 해결하기 힘들다.  요상한 표현을 통해 자기 자신을 낮추는 방식인 것이다.

그렇지만 한자어는 비교적 쉽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 단어들 중 상당수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경찰(警察), 검사(檢事), 공항(空港), 주차장(駐車場) 등의 한자 단어는 발음만 다를 뿐 단어 글자 자체는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동일했기 때문에 한자 발음 특성만 이해하면 처음 접하는 한자어라고 할 지라도 유추한 발음 중 상당수는 맞아 떨어졌다.

공부하기는 수월했지만, 한편으로는 서글펐던 것이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 단어의 상당부분이 일본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일제 치하 시절, 새로운 문물이 도입되면서 제도나 용어의 상당수가 일본을 통해서 만들어진 점을 생각하면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한자 단어 중 상당수는 일본어와 같은 것을 사용하지만, 해방 이후 만들어진 용어나 제도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한자 단어를 사용하곤 한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연예', '연예인' 이라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주재 근무 때문에 처음 일본에 건너갔을 때, TV 통해 접한 표현 중에 재미있게 느꼈던 것이 '예능', '예능인' 이라는 표현이었다.

'어라?  예능(藝能)?  예능인(藝能人, 게노진)이라니?  이게 뭘꼬?  예체능계에 종사하는 사람을 말하는 건가?'

알고 보니, TV나 영화 등의 분야 혹은 그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말의 '연예', '연예인(演藝人)'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던 용어였던 것이다.

'오호!! 한자어 중에 한국어와 일본어에서 서로 다르게 사용하는 것도 있네?'

아마도 이 '연예'라든가, '예능'이라는 표현이 양쪽 언어에 다 존재하는 단어(표현)이긴 하지만 사용하는 분야가 조금 다른 듯 했다.  우리나라에서 '예능'이라는 표현은 예체능 계통 분야를 의미하긴 하지만, 특별히 TV나 영화 등 대중매체를 통해 노출되는 경우는 '연예', '연예인' 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했던 것이다.

'연예가 중계', 'TV 섹션 연예통신' 등의 TV 프로그램 제목을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언어 표현에 자꾸 일본식 표현이 묻어나는 경우를 종종 접하게 되었다.  '~~ 향(向)' 이라는 표현이라거나, '예능인'이라는 표현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예능이라는 표현이 의외로 많이 사용된다.

예능이라는 표현이 의외로 많이 사용된다.


어디어디를 목표/방향으로 출시한 제품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 사용되는 이 '향(向, 向け, 向き)'이라는 표현이 인터넷 상에서 자연스럽게 통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어디어디를 목표로', '어디어디 시장에 맞게' 라는 표현을 사용해도 충분한 걸 굳이 일본식 표현까지 사용하는 의도가 궁금했다.

그 동안 일본 (전자)제품 들이 각 나라별로 약간의 스펙을 달리해 출시하면서 이 제품은 '한국(수출)용' 이라는 의미로 '한국향(韓國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했는데, 아마도 이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퍼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지금까지 한국어에는 없었던 표현이라 솔직히 당황스럽다.  이미 우리가 잘 사용하고 있는 '한국형', '유럽형'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이런 표현을 사용함에 특별한 의도는 개입되어 있지 않으리라 믿지만, 언어라는 것이 그네 나라 사람들의 가치관과 사고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하나의 표현을 선택하고 사용함에 있어 조금은 더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프로그램 제목이야 크게 상관없겠지만..

프로그램 제목이야 크게 상관없겠지만..

예능인 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물론 '예능'이라는 단어가 우리 언어에서도 사용되는 표현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TV, 영화 등에서 활약하는 연기자, 가수, 개그맨 등을 통칭해 '연예', '연예인' 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연예인 중에 오락 프로그램과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을 '예능', '예능인'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오락' 프로그램, 출연진 이라는 표현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현재 사용하는 것보다 더 낫고 적합한 표현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의 행태를 비추어볼 때 별다른 생각없이 그냥 (일본어에서) 가져다 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에 아쉬움이 크게 남는 것이다.

자기 것만을 아집에 싸여 고집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겠지만, 반대로 남의 것은 무조건 좋아보이는 시각도 다시한번 생각해봐야 할 우리의 습관 아닐까 싶다.

언어란 그 나라, 민족의 고유함과 특징을 나타내는 것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언어에 사용되는 표현 또한 사용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을 반영하는 것이기에 표현을 선택함에 있어 조금 더 깊은 신중함이 필요할 것이다.

그 동안 일본 TV 프로그램을 통째로 베끼다 시피할 정도로 가져다 쓴 행태에 비하면 그나마 양반이라고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씁쓸하기만 하다.


덧) 트랙백을 확인해 보니, 이미 붉은매님께서 한차례 지적해 주셨더군요.  저만 그렇게 느끼는게 아니라 다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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